아름다운사람들
 
     
 
 
작성일 : 14-04-03 10:59
나우토피아
나우토피아
존 조던,이자벨 프레모 옮긴 이민주
발행일 2013년 10월 29일 ISBN 9788965132578
페이지수 488 쪽 가격 29,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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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개의 유토피아들,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낼 가능성에 대한 실험실

문화적 정신에 위기가 찾아올 때, 우리에게는 가능성의 교차로가 생겨난다. 하나의 길은 공포로 얼어붙는 것이고, 또 하나의 길은 용기를 가지고 벗어나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가슴(cœur. 가슴, 용기)’의 뜻처럼, 용기란 말 그대로 누군가의 마음에 손길이 닿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금융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사회운동가 이자벨 프레모와 존 조던은 유토피아 커뮤니티를 찾아 유럽을 횡단한다. 저자들은 사랑하고 먹고 물건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저항하고 함께 결정하는 데 있어서 지금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을 경험하길 원했다. 그들은 미지의 국가나 완벽한 미래의 보편적인 모델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또한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커뮤니티를 원했다. 약 1년 동안 두 사람은 11개의 공동체를 여행하였고, 직접 경험했다.

그들이 첫걸음을 내딛었던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랜드매터스Landmatters’, 무정부주의학교 ‘파이데이아Paideia’,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 ‘마리날레다Marinaleda’, 반소비사회를 실험하는 ‘칸 마스데우Can Masdeu’, 어떤 틀도 없는 풍성한 상상의 세계 ‘라비에이 발레트La Vieille Valette’, 대안공동체의 딜레마를 느꼈던 ‘크라비롤라Cravirola’, 유럽 유토피아 공동체의 대명사 ‘롱고 마이Longo Mai’, 노동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기업 ‘즈레냐닌Zrenjanin’, 성과 사랑, 자유, 지구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유토피아 ‘제그ZEGG’, 궁핍한 존재들을 끌어안은 도시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두 저자는 유럽의 이곳저곳에서 색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 이들을 만난다. 11개의 다양한 유토피아적 커뮤니티 안에서 구성원들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직접 만들어낸다. 이것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종종 어렵기도 하다. 여기 11개의 유토피아 예제들은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낼 가능성에 대한 실험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경험이 우리의 다른 삶을 위해 영감을 얻어야 할 곳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서는 생각한다. 그러나 어떠한 대안적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생소할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11개의 예제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자유에 기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은 대안적 사회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에세이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방문하고 경험하는 사례 중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행기이자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이 책은 실질적인 동시에 상상적인 여행, 포스트자본주의 삶의 형태를 발견하기 위해 나선 탐험이다.

2. 나우토피아, 나만의 유토피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이해하는 것

유토피아란 불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면서 완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사회가 곧 나타날 거라는 생각, 그런 영광스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바로 유토피아를 속임수로 여기게 만드는 허황된 약속이다. 유토피아란 바로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의 삶의 방식이며, 자본주의사회의 소비천국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현재를 창조해가며 또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유토피아의 실천이란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가 결코 완벽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그 사실에 기뻐하는 동시에 기존 사회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최선의 유토피아들은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열린 경험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에 기반을 둔다. 저자들이 방문한 곳들은 혁명 이후의 성역도 아니요, 이상주의로 경직된 섬도 아니다. 이 장소들은 오히려 유토피아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실현 가능한 실천의 태도라고 재정의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이들을 불완전한 천국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 크리스 칼슨의 표현대로 ‘나우토피아Nowtopias, 여기-천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적 유토피아는 영원한 물질적 진보라는 환상을 부추기고, 절대 지켜지지 않을 신기루 같은 행복의 약속으로 신비화된다. 자본주의사회의 소비천국은 아마 20세기의 유토피아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형성되었으며, 가장 전체주의적인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추상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전한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리고 이 환상은 지구의 이 유한한 열역학적 기본 현실을 무시한 채, 그 자신의 ‘자리topos’를 잃어버린 유토피아가 되어버렸다.
다른 모든 최악의 유토피아 전형들처럼 자본주의 소비천국이라는 사회도 대안을 금지시키고, 자신의 규칙을 어기는 이들을 감옥에 보내거나 굶주리게 함으로써 벌을 준다. 소비천국이 지닌 완벽이라는 환상은 항상 우리에게 뭔가 지금 가진 것 이상을 원하게 만들고, 항상 불만족스런 상태로 머무르게 한다. 만약 완벽한 자동차가, 완벽한 몸매나 집이, 혹은 완벽한 배우자가 없다면, 이 소비천국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중독, 영양장애,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은 소비천국을 북돋우는 악순환의 고리 중 일부이다. 이 제도 자체가 환상 속에서 품고 있는 완벽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므로, 이 같은 소비천국하에서는 대다수의 희생으로 일부만 부를 쌓을 수 있다. 물론 에코시스템ecosysteme과 대양, 토지, 숲 그리고 대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 역시 기정사실이다. 우리의 자연은 이렇듯 무제한적인 경제발전의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숫자로 기록된 유토피아이며, 사람과 장소를 집어삼켜 경제상의 통계자료로써만 의미 있는 존재로 되뱉어지는 추상적인 악몽에 불과하다.

고고학자 로널드 라이트Ronald Wright는 쇠퇴해가는 제국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뿌리 깊은 신앙과 관습에 집착하며, 현재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미래를 훔치며, 부와 영광을 위해 자연 자본의 마지막 남은 것을 광적으로 낭비해버리는.’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위기에 강하며 협력으로써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반권위적인 사회 모델이 정말로 필요하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사회적ㆍ환경적 정의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서로를 구속하는 한 자연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배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사는, 그런 대안사회의 소규모 본보기인 공동체들을 소개할 수 있기 바란다. 완벽한 세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 권위주의로의 편향이 불가피하지 않은 세상, 그리고 그 반대의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추구하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1개의 나우토피아들은 그들이 세운 규칙에 따라 사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많은 편리한 원리들을 거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을 단단하게 결속시켜주는 유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모두가 다르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두 저자의 여행을 통한 완벽한 결론이다. 유토피아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이란 항상 자본주의에게는 위험 요소였다. 유토피아는 아무 데에도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유토피아는 우리가 그를 재정복하는 곳 어디에나 있다.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멀리, 역사의 종말로부터 현재의 바로 이 순간으로 유토피아를 데려온 그 지점에 있다. 유토피아는 다른 어디가 아닌 바로 이곳에 있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란 이곳, 그리고 바로 지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가 ‘유토피아적 순간’이라고 부른 개념이다. 모든 것에 선행하는 그 일각의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한 바로 그 순간 말이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유토피아 건립을 시작할 수 있다. 왜 기다리는 것인가.’

3. 창조와 저항, 다른 세계를 만드는 21세기시민불복종 코드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훈련식의 캠프와는 달리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하고 대안적인 방식을 실험해보고 또 그렇게 살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도록 권유하는 근본적인 변화로의 초대다. 정치 철학자인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은 이렇게 말했다. “빼앗긴 흥미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전반적인 질서에 대한 흥미를 말이다. 자유에 대한 흥미를 되살려야 한다.”

그들은 사회가 전면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열쇠는 사회적 다양성과 실험 정신이 살아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으며, 이미 정해진 투쟁적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 들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런 틀 안에서 질문은 답변만큼이나 중요하며, 의견 불일치를 체험함으로써 배워가는 과정은 창의적인 동맹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를 두고 사회운동가이자 대학교수이며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의 참가자인 폴 채터턴(Paul Chatterton)은 ‘비공통 공간(terrain non commun), 즉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고, 전투적 태도와 비전투적 태도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공통점이 도출되어 무르익어갈 수 있고, 경험과 비판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부른다.

저자들이 여로를 시작한 십슨 마을에서의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가 끝날 무렵, 이들은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캠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모두가 기쁨에 겨워하던 그때에 한 엄마와 두 소녀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근처 마을의 주민인 그들은 손으로 서툴게 쓴 ‘십슨 마을은 당신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크게 감격한 저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눈시울이 촉촉해진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덧붙여, 돌이켜 보면 모든 게 너무 빨리 지나간 듯하지만 이 캠프의 모든 걸 조직하는 데에는 꼬박 1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들판에서의 일주일을 위해 1년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에게 자본주의라는 끔찍한 늪을 건너게 해주는 다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다리에는 반대쪽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고, 또 날씨가 어떻든 그냥 있던 곳에 있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와 같은 활동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는 그런 팻말을 무시하고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다. 일시적이나마 일상의 반복이 아닌 것을 상상하는 우리의 능력을 가두어놓으려는 사회의 논리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가 끝나고, 모든 참가자는 이제 그들의 직장으로, 음울한 슈퍼마켓 판매대 사이로, 주위의 시선을 서로 피하는 지하철로, 지시만 내리는 상사가 있는 직장으로, 사람을 소외시키는 소비천국의 손아귀 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금 복종의 상태로 돌아가 마비된 사람처럼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창의성과 능력을 잃어버린 채 살게 된다.

모든 사회는 카니발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 자체의 규범을 뒤집을 수 있는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보존하거나 지속시키거나 자연스런 일상 속에 결합시킬 수 없다면,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와 같은 사건은 언제까지나 말단이 갈라져 틈이 생겨버린 시스템을 위한 배출구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회성 시위나 산발적인 소요 사태를 걱정하지 않는다. 권력은 이런 사건이 지속되어야만, 그리고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아야만 비로소 그런 저항의 움직임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존재방식을 실험하기 시작할 때, 또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대안적 미래를 믿기 시작할 때, 그제야 그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록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불과하더라도 다른 논리를 따라가는 삶을 맛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로 인한 대소동이 벌어지는 한가운데에서 고전하더라도 자본주의 이상의 무엇인가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게 된다.

4.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부터 가장 에로틱한 마을까지

이 책은 다른 미래를 향한 가능성과 딜레마, 현실의 벽, 과거의 시행착오, 그리고 지금 현재 여기에서 미래를 창조하고 현실의 벽에 거침없이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이 찾은 불완전한 유토피아, 현실 속의 나우토피아가 바로 이 책에 있다.

드매터스.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며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협동 영속농업이 이루어지는 곳. 그들은 랜드매터스의 농지에 값싸고 친환경적이며 생태발자국이 낮은 벤더를 건축함으로써, 대규모 산업형태의 농업에만 친화돼 있는 영국의 토지개발정책에 도전한다. 이곳은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와 같은 곳이다. 그 미래는 화석에너지 중독에서 벗어난 미래로, 우리가 생태계의 한계를 존중하며 행복하게 삶을 꾸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인 것이다.

파이데이아 무정부주의학교.
어린아이와 성인 들의 비계층적 공동체로 운영되는, 심지어 18개월짜리 아기도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곳이다. 요리에서 교과과정까지 모든 부분이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곳의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에게 자유와 책임이 어떻게 서로 양립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알렉산더 닐Alexandre Neill이 세운 서머힐과 같은 여러 ‘자율학교’와는 달리, 파이데이아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란다는 걸 수동적 개념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뭐든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데 비해 교육자들은 무기력하게 있는 식의 자유방임이 아니다. 여기에는 훨씬 역동적인 과정이 있는데, 명확히 정의된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학생과 교육자의 권리가 동등하게 인정받는 학습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파이데이아학교의 생활과 학습의 중심에는 아나키즘 철학에서 비롯된 평등, 정의, 연대, 자유, 비폭력, 문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복이라는 일곱 가지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 수학이나 외국어보다 더 중요한, 진정한 교과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를 가르치는 방식 역시 그 가치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긴다. 여기 아이들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욕구를 완전히 인식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서로의 요구를 이해하고 그것에 응답한다. 이것이 바로 공감에 대한 교육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규범이 되고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경제 붕괴의 시기에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교육이었을 터이다.

제그.
성 해방구인 제그에서는 성이란 삶에서 가장 큰 매력의 힘으로, 숨기면 안 되고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활용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곳은 모두가 다른 사랑의 방식을 선택한다. 일부일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여러 사람과의 연애를 즐기며, 또 일부는 순결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내가 가질 수 있는 애인의 숫자가 아니라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얼마나 배울 수 있는가, 얼마나 내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제그는 혁명적인 성생활만큼이나 근본적인 솔직함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굳어버린 정서적 구조의 변화를 체험한다. 제그의 창립자는 자신의 성적인 모습을 두려워하는 한 우리 인류는 결코 평화롭게 살 수 없다고 믿었다. 30년간 지속된 신뢰와 투명성의 급진적 모델을 구축하는 기법을 통해 제그와 제그 멤버들은 자유로운 사랑을 실천할뿐더러 가능한 모든 성과 사랑, 자유를 지켜나간다.

칸 마스데우.
오늘날의 소비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곳. 어떻게 해서 우리는 공장이나 사무실 조직이 사전에 정해둔, 정말로 좋아하기는 힘든 그런 일에 동기부여를 하고 자발적으로 응하게 된 것일까? 업무의 세분화, 강제된 절차, 노동 시간, 생산성에 대한 의무사항 등은 사실 자본주의 기업 조직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므로 ‘일터 밖에서’ 보상받을 만한 것을 찾아야 했고, 무엇보다 ‘좋아하기란 불가능한’ 노동을 노동자들이 이러한 ‘일터 밖에서’의 보상을 얻어낼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적게 일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버는 걸 선호한다는 생각이 전제된 것으로서, 수많은 저항의 사례를 통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안락한 근무환경이나 임금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물품이나 서비스 등 아주 다른 것들을 선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과 사회화의 과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생산자로서의 노동자에서 소비자로서의 노동자로의 전환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1950년대의 폭발적인 광고의 성장은 필요라는 개념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기에, 이러한 과정에서 광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오늘날의 소비주의사회는 그런 식으로 탐나는 재화를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로 삼게 되었다. 임금은 노동활동의 핵심 목적이 되었고, 돈은 다른 모든 가치를 밀어내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소비를 통해 사회화된 개인은 더 이상 사회 속에 통합된 개인이 아니며, 다른 이들과 차별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도록 부추겨진다. 이렇듯 소비생활은 끊임없이 사적 영역에서 벗어날 것을 선동하고, 그로 인해 연대와 상호부조의 조직이 와해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칸 마스데우는 이런 태도의 정반대 자세에 기대를 건다. 스스로 일을 선택하고, 또 오직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은 더 이상 다른 뭔가를 얻기 위해 임무를 실행하는 과도적인 단계가 아니라, ‘직접적인 만족’을 주는 행위이다. 이는 일을 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칸 마스데우는 ‘게으른 자들의 소굴’이 절대 아니란 뜻이다. 그저 이곳에서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으며, 일에 대한 대가는 돈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생산 또는 제공된 것이 어떻게 평가받고 사용되는지에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칸 마스데우의 시스템이 소련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이들은 개인의 필요에 대한 존중과 그룹 사이의 미묘한 균형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칸 마스데우 건물은 대부분 공용 공간이긴 하지만 각 멤버들은 자기만의 방,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시간 활용 역시 일주일에 이틀은 공동작업과 공동식사에, 한 달에 하루는 전체 건물 청소에, 또 일주일에 한 번은 대중에게 개방하는 소셜 센터의 점심 식사 준비에 할애할 뿐, 그 외의 나머지 시간은 각자가 자유롭게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즈레냐닌.
저자들이 유럽의 가장자리로 가고 있을 때, 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세르비아의 파산한 공장의 얼어붙은 철골 뼈대에 도착했을 때, 자본주의 시스템의 균열이 더욱 퍼지고 있었다. ‘더 많이! 더 써라!’는 피할 수 없는 문명의 만트라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산업 중심지 즈레냐닌에는 민영화와 감축을 거부하고, 공장 근로자의 자주경영을 요구하는 대담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곳을, 즈레냐닌의 현지 공장 두 군데를 장악하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서 승리를 거둔 저항자들, 바로 제약공장인 ‘유고레메디야’의 근로자들이 3년간의 파업에서 승리를 거둔 데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부패한 새 공장주로부터 공장을 되찾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이뤄냈다. 이렇듯 근로자 스스로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복잡한 프로세스의 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는 이름의 민영화를 거부하도록!

마리날레다.
이곳은 불안정한 비정규 농업 근로자들의 불복종은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실업자와 땅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3,000명이 1980년에 신부와 경찰에 의해 도시 밖으로 추방되었다. 갈 곳 없는 그들은 무려 17만 헥타르(5억1,425만 평)나 소유하고 있던 그 지방의 공작으로부터 1,200헥타르를 점유하기 위해 파업, 단식투쟁, 도로점거를 강행했다. 그리고 공작의 땅을 수용收用해낸다. 그들은 공장을 짓고, 한 달에 15유로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정책을 구축하고, 디스커버리채널을 불법적으로 접속하여 텔레비전도 연결한다.
유럽에서 가장 황량한 곳이었던 이곳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가장 살기 좋은 마을 중 하나로 변모하였다. 이들이 일구어낸 현실은 마리날레다의 모토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리나레다-평화를 향해 가는 유토피아-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여느 도시의 슬로건보다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롱고 마이.
이곳에서 저자들은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서로에게 약속했다. 24시간 자체 라디오 방송국, 양 떼, 무료 와인, 양모 공방, 베이커리, 세 가지 정기 간행물과 수십 개의 국제 활동가 조직. 저자들이 방문한 곳은 유럽 전체에 걸쳐 퍼져 있는 다른 여덟 개의 롱고 마이 커뮤니티들의 교점이었다. 이 커뮤니티는 대형 네트워크 규모에서 지속될 수 있는 급진적 집단생활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롱고 마이의 거주자들은 가뭄과 농업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연 파괴로 인해 더 이상 계절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오늘날의 현실 말이다.

크리스티아니아.
무단 점유되고 자가 운영되는 ‘자유도시’.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 호수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군대 병영에 세운 도시 속의 도시이다. 크리스티아니아는 사회가 주변인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항상 끌어들여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도시, 크리스티아니아는 훨씬 개방적이고 관용을 베풀며 사람들의 연대의식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모든 게 가능해요. 졸업장도 필요 없고, 신분을 보증해야 할 필요도 없지요. 그저 같은 것에 관심 있는 다른 사람들만 찾으면 돼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항상 찾을 수 있죠! 그러니 누구도 버림받은 느낌을 받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누군가 병이 나면 항상 이웃이나 친구 들이 모여 그를 도와요. 제가 알기론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외로이 혼자 죽어간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 우리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 마약을 하거나 알코올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보통 아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불안정한 사람이란 걸 인정해요. 실패한 인생이나 인간쓰레기라고 취급하지 않지요. 오히려 예를 들어서 이들이 얼마나 공동체에 기여할 게 많은지, 이들이 얼마나 창의적인지 잘 알아요. 아주 연약한 사람들이 그들의 존엄성을 되찾으러 이곳에 오는 거랍니다. 여기서 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화가 난 채 나간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 걸 보면 이곳이 어떤지 잘 알 수가 있는 거라고 전 생각해요.”

약 1년 동안 이어진 이자벨 프레모와 존 조던의 나우토피아 여정은 영국에서 시작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거쳐 동유럽으로 향한 뒤 독일을 지나 북구에서 끝을 맺는다.
저자들은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틈바구니 속에서 활발히 살아 있는 유토피아들을 발견한다. 여기저기 등장하는 인물들과 장소들은 조금씩 현재의 틈 속에서 가능한 또 다른 미래의 섬광을 점쳐보게 해준다. 이 여행을 마치면서 그들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건립하겠다는 꿈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그 꿈을 공유하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저자 : 존 조던 (John Jordan)

셰필드핼럼대학교Sheffield Hallam University의 전 교수이자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 ‘거리를 되찾자Reclaim the Streets, RTS’와 영국의 대안세계화운동단체 ‘광대군단l’Armee des clowns’ 그리고 이자벨 프레모와 함께 만든 ‘반항적인 상상력연구소’ 그룹의 공동설립자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다큐멘터리 영화 〈더 테이크The Take〉에 참여하면서 교수직을 사임했다. 저서로는 공동 출판한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We Are Everywhere》가 있다.

저자 : 이자벨 프레모 (Isabelle Fremeaux)

런던대학교 버크벡칼리지Birkbeck College, University of London의 미디어와 문화연구학과 전 교수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프랑스에서 성장한 프레모는 런던에서 공동체 개념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공공 교육과 저항의 창조적인 형태에 관한 탐구였다. 한때 프리랜서 기자로도 활약한 바 있으며 현재는 활발한 사회운동가로서 공동 저자인 조던과 함께 ‘반항적인 상상력연구소’를 설립, 이 연구소를 통해 예술과 사회운동이 어우러진 활동을 진행 중이다. 본서 《나우토피아》의 출간 이후 교수라는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존 조던과 함께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농장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립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역자 : 이민주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런던정경대학교LSE에서 개발경제와 구호 관련 문제, 사회적 소외 개념을 공부하고 개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파리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현재 파리 1대학의 총장인 필리프 부트리 교수의 사사 아래 현대 NGO운동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월드컵조직위원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등의 의뢰로 다수의 국제 스포츠 및 문화행사 통·번역을 담당했으며, 숭의여자대학교에서 영어를 강의했다. 현재 유럽에 거주하며 제3세계 문제와 저항운동, 긴급구호활동의 빛과 그림자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논문 저술 및 영어·불어 통·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프롤로그 - 인간됨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1장. 나우토피아,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이해하는 것
2장. '지금'을 위한 저항과 창조의 만남 -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Camp Climat
3장. 사회적 실험이 자연을 만날 때 - 랜드매터스Landmatters
4장. 무정부주의학교란 과연 어떤 곳인가 - 파이데이아Paideia
5장.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 - 마리날레다Marinaleda
6장. 반소비사회를 실험하다 - 칸 마스데우Can Masdeu
7장. 어떤 틀도 없는 풍성한 상상의 세계 - 라비에이 발레트La Vieille Valette
8장. 대안공동체의 딜레마 - 크라비롤라Cravirola
9장. 유럽 유토피아 공동체의 대명사를 경험하다 - 롱고 마이Longo Mai
10장. 신자유주의의 물결에서 승리를 거둔 저항자들 - 즈레냐닌Zrenjanin
11장. 성과 사랑, 자유, 지구 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유토피아 - 제그ZEGG
12장. 궁핍한 존재들을 끌어안은 도시 -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에필로그 - 열한 개의 유토피아들,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낼 가능성에 대한 실험실